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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노벨 테레시아의 최후

한우임다 2025. 3. 13.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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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날아갔다.

모래폭풍 속에 있는 것처럼 시야가 어지러워지며 주위 소리도 띄엄띄엄해서 듣기 어려워졌다.

“──!”

누군가의 노호가, 비명이, 절규가 들렸다.

토벌대는, 백경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출진한 군세는 괴멸 상태에 빠져 있었다.

주위를 짙은 안개가 에워싸고 있어 어느 쪽으로 도망치면 되는지 당최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저 막연히, 강대한 압박감으로부터 달아나듯 모두가 소리를 지르고있는 것 같았다.

“────.”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창졸간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혹하기 그지없는 격전이었지만 전황은 토벌대가 우세했을 터다. 백경을 상대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은 채 일선에서 물러났던 자신이라도 보탬이 된다고, 그렇게 생각한 기억은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했다가 위화감을 깨달았다. 그것은 희미한, 그러나 절대적인 위화감.

팔다리에, 눈에 문제는 없다. 하지만 마치 날개를 잃은 것만 같은 상실감이──.

“가호가…….”

『검성의 가호』의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

아무리 검을 멀리해도 결코 사라지지 않던 감각이 사라졌다.

“──라인하르트!”

한순간, 자기 안에 있던 가호가 누구에게 계승되었는지 손에 잡힐 듯 알 수 있었다.

숙부가 테레시아에게 가호를 계승한 사실을 알아차린 것과 비슷하게. 혹은 단순히 테레시아가 라인하르트의 한계를 모를 천부적 재능을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테레시아는 차기 『검성』이 라인하르트라고 확신했다.

그 감각은 어쩌면 『검성』을 동경하던 하인켈에 대한 배신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생각을 탓할 이도, 그럴 시간도 남아 있지는 않았다.

“──어머, 이런 데 여자가 한 명. 참 용감하군요.”

“웃──.”

단아한, 그리고 생뚱맞은 목소리가 들려서 테레시아는 전율하며 돌아보았다.

짙은 안개 속에서 백금색 머리 소녀가 나타났다. 소녀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낯선 상대에게 건네는, 무상의 우애가 연상되는 자비로운 눈빛을 띠고 있었다.

그것은 공포를 품게 할 만큼 뒤죽박죽에 일그러졌으며 너무나 방대한 애정.

“미움을 사고 말았네요.”

테레시아는 뽑을 수 없어진 『용검』을 내버리고 발밑의 장검을 주워 덤벼들었다.

평시라면 하지 않을 판단. 그러나 이곳은 백경의 안개가 지배하는 죽음의 세계── 그곳에서 유유히 걸어 나온 소녀라면 괴기를 넘어서서 위험에 불과하다.

『검성의 가호』를 잃어도 테레시아의 몸은 과거의 검술을 재현할 실력이 있었다.

충분하고도 남을 검기를 담아 내지른 검격이 소녀의 몸을 양단하고──.

“──당신을, 이해하고 싶답니다.”

다음 순간, 고혹적인 목소리가 고막을 간질이고 의식이 어둠에 떨어졌다.

하늘에서 떨어지듯이, 물속에 잠겨들 듯이 의식이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갔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손자의 미래를, 아들의 마음을, 두 사람을 잇는 며느리를 생각하는 마음이 내달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빌헬름.”

사랑하는 남자의 이름을 부르고, 의식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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